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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보내는 편지

의사가 임상 외에 할 수 있는 일들

의사가 임상 외에 할 수 있는 일들

딱 1년 전에 썼던 글인데 생각이 나서 살짝 업데이트 후 다시 올립니다. MD가 할 수 있는 비임상 영역은 이외에도 무궁무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지만, 진료실 밖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정말 많습니다. 최근 의대생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어, 오늘은 의사가 임상 외에 할 수 있는 일들 관련 포스트를 남겨볼까 합니다.

 

우선 의사가 되기 위해선 의과대학 4년과, 의예과 2년 또는 학부 4년 동안 고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배우는 내용은 임상의사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을 배우고, 임상과목을 배우고, 최종적으로 실습을 통해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실전에 접목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의료 관련 내용 외에도, 윤리와 같은 의료와 관련된 사회과학을 배우고, 학교에 따라선 의사가 맞닥뜨릴 수 있는 기본적인 법학을 배우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환자 진료 보조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성을 키우게 됩니다.

 

이렇게 6-8년간의 고등교육 후 임상의사가 되는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대학병원급 진료기관에서 인턴 등의 수련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임상의사 외에도 MD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첫 번째로, 가장 그나마 의료에 가까운 직종은 과학 연구직일 것입니다. 흔히 추가적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 나아가게 됩니다. 임상의사들 또한 연구를 하긴 하지만, 환자를 보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하는 MD/PhD들도 미국에는 있어 왔고, 한국에서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Just to be clear, 이는 의학박사와는 매우 다른 개념입니다. 의학박사는 임상의사를 하면서 임상과 관련된 학문적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개념이 강하지만, 기초학을 연구하는 MD/PhD들은 임상진료가 아닌 연구를 통해 커리어 개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의사인만큼, 임상의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하기도 하고, 전적으로 기초적인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진료를 하는 의사들의 경우, 수입의 대부분이 환자진료에서 나오지만, 연구직의 경우 소속기관 및 기타 연구비를 따와서 수익을 창출하게 됩니다. 연구를 하는 의사들의 경우 대학병원 교수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병원이 아닌 바이오 기업의 연구직 또한 가능합니다. 기업 내 둥지를 틀 경우, 매우 기초적인 연구보다는, 실제로 상용화 가능한 제품들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업 내 의사가 될 경우, 비즈니스적 마인드 여부에 따라 회사의 임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업 관련 업무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뤄 보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정책자입니다. 위의 과학 연구직과 마찬가지로 추가적인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학위로는 경제나 경영학위에서 시작해서 저와 같이 법학이나 세부의료 관련 학위들이 있습니다. 최근들어 MPH(Masters in Public Health) 과정을 이수하는 의사들도 꽤 많이 늘고 있습니다. MPH의 장점은 1-2년 과정이라는 것과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석사학위라는 점과 세부적인 전공학위라기 보다는, 공중보건을 폭넓게 훑고가는 학위로 인식된다는 점입니다. 석사학위의 경우, 최근 미국의 경우 학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MBA를 포함한 대부분의 석사학위들이 예전만큼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MPH의 경우  MD가 아닌 학부졸업생도 학위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건학과 관련된 기본적 공부를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매우 적합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전문적으로 보건학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원하실 경우에는 박사과정을 추천합니다. 이는 박사과정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커리어가 보건학과 관련된 학문이라면 그 end goal에 가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박사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의료관련 정책으로는 흔히 뉴스에서 접하는 포괄수가제나 의료보험과 관련된 정책이 포함되며, 일반적으로 의료의 시스템적인 면을 학문적으로 또는 실전에서 발로 뛰며(공무원 등) 정책수립 등을 하게 됩니다. 즉, 대학교수, 공무원, 연구기관 연구직원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 한국에는 많은 편이 아니지만, MD로서 정책공부를 한 후 정치를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얘기하는 MD 정책자는 정말 학문적으로 정책공부를 한 후 의료정책 수립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제 경우, 로스쿨 졸업 후 1년 동안 의료정책일을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료개혁과 매사추세츠의 의료개혁 입법과 시행과정에 참여했는데, 의료산업이란 큰 그림을 정책적 렌즈 하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제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만난 정치인 중 의사는 없었지만, 한국으로 치면 건강보험공단인 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CMS)의 수장역할을 맡았던 Donald Berwick, MD가 최근 다음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2014/7 update 실제로 현재 출마한 상태입니다). 어쨌던 MD로 정책을 커리어로 취할 경우, 커리어 옵션은 대학교수나 공무원, 정치인 또는 Pew Research Center와 같은 연구기관에서 직책을 맡는 것입니다.

 

Local 의료정책 외에도 글로벌 스케일의 의료관련 기관인 WHO 등의 국제기구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기관에서 직접 근무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본 결과, WHO와 같은 국제기구 또는 KOICA와 같은 한 국가의 국제협력단과 같은 단체들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실제로 가치부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미국이나 한국과 같이 경제수준이 어느정도 이상인 국가의 local health care 에 참여하시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커리어 pathway는 아닙니다. 국제기구나 한 국가의 국제협력단 이외에도 사회전체적 의료수준 향상에 기여를 하고 싶으시다면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과 같은 사립재단과 같은 옵션이 존재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러한 단체들은 한 국가의 경제개발과 의료질을 높인다는 목적뿐만 아니라 의료/경제식민지화란 면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가가 다른 국가를 경제적으로 돕는 이유는 정말 여러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원조를 통해 자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형성하고, 이를 통해 민간경제활동 또한 촉진시킨다는 것입니다(macro level). Micro level에서는 MD가 이런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면도 보입니다. 자격이 되시어 미국에서 활동을 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Health and Human Services 산하단체인 Office of Global Affairs도 고려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의학 관련 연구, 의료 정책, 의료 정치,  global health 외에도 저처럼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MD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의료산업은 정말 포괄적인 분야입니다. 포스팅을 위해 의료산업을 우선 제약이나 의료기기 산업으로 제한하더라도, MD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정말 다양합니다. 임상적 경험이 있는 MD의 경우 그 임상경험을 살리고 싶다면 바이오기업의 medical director로 근무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기업들은 제품을 시장으로 가지고 나오기 위해 다양한 임상시험을 하고 규제를 따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MD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Medical director들은 임상시험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이를 supervise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 medical director로 근무하고자 할 경우, 임상경험이 어느정도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미국의료면허나 ECFMG certificate 등을 필요로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서든, 환자를 보는 임상경력을 쌓았다면 충분할 수 있습니다.

 

MD라고 무조건 임상시험에 국한적으로 참여하란 법은 없습니다. MD로 비즈니스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으며, 기업경영과 운영, 마케팅 등에 직접 관여하는 일 또한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MD에 따라서 MBA나 추가적 경영자 과정을 밟기도 하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BA 말이 나온 김에 MD/MBA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나열해 볼까 합니다. 우선 컨설턴트란 직업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릅니다. 즉, 의사 경영자의 마인드로 병원이나 바이오산업에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 하에서 전문지식을 제공해 주는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단, 한국에는 제약이 좀 보이긴 합니다. 의료는 우선 규제가 상당히 강한 분야인데, 의료법과 같은 규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컨설턴트로서 최대한의 value add를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의 의료시장은 아직 많이 큰 편이 아니어서, 값비싼 노동력인 컨설턴트를 많이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MD/MBA 컨설턴트의 수요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야기가 많이 다릅니다. 정말 많은 병원들과 바이오기업들이 존재하고 있고, MD/MBA를 충분히 afford할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한, 산업자체가 큰 만큼, 움직임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컨설팅 시장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컨설팅 뿐만 아니라, MBA를 통해 병원과 바이오기업의 경영진으로 충분히 치고 들어가 근무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임상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전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과 직원들과 connect할 수 있고, 동시에 경영적 마인드를 통해 병원 및 기업 운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또한, MD이기 때문에 병원이나 기업과 관련되어 임상적 전문성을 제공하는 MD들과도 스스럼없이 함께 일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end user가 의사인 제품의 경우 직접 마케팅까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커리어의 폭이 매우 넓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MD가 산업에 참여하기 위해 MBA가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MBA가 있긴 합니다만, 학비가 거의 공짜였고 바이오벤처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돌이켜 봤을 때 할만한 과정이었지, 2년간의 학비와 기회비용을 감안했을 때 단순히 학교만을 다니기 위해 MBA를 하는 것을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I think this should really be on a case-by-case basis.

MBA 외에도 저와 같이 로스쿨 과정을 밟아 변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MD는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변호사 또한 TV에서 보여지는 송무변호사(법정에서 서는 변호사) 외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MD/JD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저처럼 로펌에서 병원과 바이오기업들을 대리하는 기업자문 변호사가 될 수도 있고, 병원과 바이오기업이 처해지는 기업적 소송에 참여하는 business litigation 변호사가 될 수도 있으며, 의사-변호사라고 말하면 흔히 생각하시는 의료소송을 담당할 수 도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의료는 상당히 규제가 강한 산업인만큼, 거의 모든 병원 및 기업에 의사가 있어야 하듯, 변호사가 있어야 합니다. 즉, 제가 로펌을 나가게 되면 병원의 법무팀이나 바이오 기업의 법무팀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산업이 아닌 정책을 하고 싶다면,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의료산업을 규제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으며, 법보다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더 생긴다면 병원이나 바이오기업의 경영진으로 자리이동을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위의 모든 경력을 살려 투자기관에서 근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즉, 투자마인드가 있다면 병원이나 기업에 자본투자를 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역할을 MD로써 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벤처펀드나 인베스트먼트 펀드에서 근무하시는 MD들을 실제로 몇 명 보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내용이 이 정도지만,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생각치도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 종사하고 계시는 MD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MD는 임상의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MD라고 해서 무조건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법 또한 없습니다.

 

정말 긴 포스팅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MD가 진료실 밖 세상에서 근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학위와 자격증이 몇 개인지가 아니라, 세상을 넓게 바라볼 준비가 되었는지, MD가 아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근무를 할 자세가 되어있고 그럴만한 social skill이 존재하는지입니다. 또한, 임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사를 포기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비임상의 길은 또 하나의 커리어여야 하며 임상의사를 포기하고 취하는 secondary option이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임상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시고 진료실 밖에 세상에서 커리어를 만들어 나아가고자 하신다면,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자신의 임상적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를 먼저 고민하신 후, 추가적으로 필요한 학문적 교육이 필요하다면 이를 취하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